대게 우리가 접하는 전문가 혹은 '천재'라고 칭송하는 주변의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오며 '전문성'을 키워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척하면 아' 하고 알 정도로 그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한다. 가까이는 내 옆의 김대리가 될 수도 있고, 좀 더 넓게는 어느회사의 김 과장, 어느 대학 교수 아무개와 같은 식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은 돋보이는 존재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어떤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전망이 필요할 때 이런 전문가들을 찾아 나선다.
과연 전문가 1명의 파워는 얼마나 막강한 것일까? 최근에 번역 출간된 책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 ( 원제: Future bubble ) 에서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게 좋을정도로 형편 없다는 사실을 방대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그럼, 좀 더 범위를 좁혀서, 내가 일하는 회사, 혹은 학교 연구팀에서 이런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전문가의 의견은 어느 정도로 유의할까?
특급 전문가 vs.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
특정 전문가가 p1의 확률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고 하자. 동시에 전문가 보다는 못한 p2 의 확률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모인 팀이 있고, 다수결로 팀의 결정을 내린다고 하자. 어느 쪽이 더 높은 빈도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까?
특정 전문가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확률 P(s)=p1
p2의 확률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팀원 N명의 다수결이 올바른 결정일 확률 P(s) 는 아래와 같다.
이를 계산해서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특급 전문가를 이기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집단
위의 그래프에서 보여지듯, p1의 확률이 0.5 이상인 경우( 즉, 동전던지기 보다는 나은 확률인 경우 ), 특급 전문가 1인 보다는 평범한 팀이 더 높은 확률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75%확률로 옳은 결정을 내리는 7명이 모이면 93%의 확률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11명이 모이면 96.5% 확률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는 90% 확률로 옳은 결정을 내리는 특급 전문가보다 평범한 팀이 더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몇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1.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팀원
보통 집단 내에서는 집단의 의견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팀장' 혹은 이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 팀원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동등한 권한을 가진 팀원이라 하더라도 똑똑하다고 인정받거나, 평소 성과가 좋아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특급 팀원'이 바로 이런 이들. 팀장 내지 이런 '특급 팀원'의 의견을 '보통의 팀원'들이 쉽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정말 같은 의견을 가진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라 본다.
팀장이나 특급 팀원, 좀 더 넓게는 지도교수, 회사의 사장 등 어떤 사람 앞에서도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자그마한 팀'이 가져야 할 팀원이다. 다양한 경력의 팀원들이라면 같은 분야의 팀원으로 구성된 팀보다 상대적으로 좀 더 독립적인 사고능력이 높은 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동등한 결정 권한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팀원으로 구성된 팀이라도 자신의 의견으로 팀의 의사를 결정지어 버리는 권위적인 팀장이 버티고 있다면 특급 전문가를 앞서는 소수의 팀으로서의 능력은 사라지고 만다. 팀원들의 판단이 동등한 권한(1/N) 을 가지고, 이들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으로 취합될 때, 비로소 특급전문가를 이기는 강한 팀이 될 수 있다.
팀원 숫자는 홀수가 낫다, 짝수라면 ...
확률 계산을 따르자면, 홀수 인원의 팀은 짝수 인원의 팀보다 더 높은 확률로 옳은 결정을 내린다. 홀수인 팀은 3명을 예로 들자면, 옳은 의견을 낼 1명과 그렇지 않은 1명을 상쇄하고 남는 나머지 한명이 옳은 확률을 내면 팀은 옳은 의견을 선택한다. 하지만 4명으로 이루어진 짝수 인원의 팀이 옳은 의견을 내기 위해선 3명이 옳은 의견을 내야 한다.
붉은 색이 팀원 수가 홀수인 경우, 검은색이 팀원 수가 짝수인 경우. 같은 모양의 점이 들어간 붉은색과 검은색 라인에서 검은색이 팀원 수가 1명 더 많은 짝수 팀이고, 팀원이 늘어났지만, 오히려 y축의 옳은 선택을 할 확률 P 가 낮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 라인이 조밀해 실제 눈으로 판별은 몇몇 점에 대해서만 가능한 듯 하지만 ) |
'정'과 '반' 이 홀수팀에선 평균적으로 상쇄되고 남은 한명이 옳은 의견을 내면 팀이 옳은 의견을 내는데 반해, 짝수팀은 '정'과 '반'이 같은 경우에 팀은 틀린 결론을 내게 되는데서 이런 차이가 나타난다.
짝수팀에서 나타나는 이런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선 , '정'과 '반'의 숫자가 같은 경우, 랜덤으로 한명( 혹은 가장 확률이 높은 투표권자)을 선정하고 그의 의견에 따르는 장치를 마련하면 홀수팀+1의 짝수팀이 더 높은 확률로 옳은 의견을 낼 수 있다.
큰 회사가 더 믿을 만 하다, 더 잘한다?
큰 회사,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룹이 소수의 팀, 작은 회사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모델에 따르자면 10명이 넘어가면서 그 차이는 거의 존재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큰 그룹의 의사소통 비용 ( 들이는 돈, 시간, 장소 등등) 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소수의 강력한 팀에 비해 서로 의견 조율도 어렵고, 결정 과정도 기민하지 못하다. 가장 큰 문제는 숫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팀장 몇명, 혹은 대표 1인의 의견이 매우 강력하게 의사결정에 적용이 된다는 점이다. 위의 분석에서도 보여지듯, 강력한 1인 보다는 적당히 강력한 다수의 의견이 옳을 확률이 더 높다.
2-3명으로 시작하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신화가 된데는 이런 의사소통 과정의 효율성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동료들의 확률 높은 의사 결정 과정이 뒷받침 되었던 것도 분명히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의사결정을 많이 하며 빠르게 나아가야 유리한 '새로운 산업', 즉 첨단 산업의 경우에 소수의 팀으로 이루어진 작은 회사들이 대기업에 앞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이런 의사소통과 결정 과정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마무리
'옳은 판단'을 하는 특정한 시스템을 가정하고 고작 두개의 변수만을 가지고 통계 계산을 해 시뮬레이션 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도출된 내용들을 그대로 실생활에 적용하는데는 무리가 따르지만, 미지의 문제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독립적인 사고를 하며, 동등한 권한을 가진 그룹이라면 글에서 시사하는 내용들을 한번쯤 떠올려 적용해 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
더 읽을 거리
- 관련된 내용의 블로그 글, 대중의 지혜( http://geference.blogspot.com/2011/11/wisdom-of-crowds.html )도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이 글에 언급된 상황의 확률 문제는 The flippant juror 라는 고전 확률 문제를 변형한 것이다.